월급은 식탁에 오기 전에 빠져나간다

저녁 일곱 시, 식당의 조명은 모두 켜졌는데 창가의 좋은 자리가 비어 있다. 예약을 취소한 사람은 메뉴판에 적힌 가격보다 이번 달 자동이체를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전세대출 이자, 올라간 월세는 월급날 가장 먼저 빠져나간다. 이자와 임대료는 금융과 주거 서비스를 이용한 대가지만, 가계로서는 미루기 어려운 고정비다. 한 끼, 한 권의 책, 아이의 수업, 동네 가게의 매출이 그 뒤에 줄을 선다.

식당의 빈자리에는 재료비와 인건비, 임대료, 치열한 경쟁이 겹쳐 있다. 그래도 가계부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순서는 냉정하다. 주거비와 원리금 부담이 커질수록 다른 소비에 쓸 여력은 줄어든다. 한국은행의 가계부채 분석은 과도하게 쌓인 가계신용이 원리금 부담을 통해 민간소비를 오랫동안 제약했다고 추정한다.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2012년 수준으로 관리됐다면 2024년 민간소비 규모는 실제보다 4.9~5.4% 컸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끼를 포기한 돈은 사라지지 않았다. 식탁에 오기 전에 이미 다른 계좌로 떠났다.

감면은 집값에 스며든다

집값에는 벽과 바닥뿐 아니라 그 집에서 앞으로 누릴 편익과 치러야 할 비용도 들어간다. 세금과 유지비 같은 미래 비용이 작을수록 오늘의 가치는 커진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매년 내야 할 보유세가 줄어들 때 매수자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은 올라간다. OECD가 정리한 국제 연구에서도 반복적 보유세가 주택가격에 반영되는 현상이 뚜렷했다.

감면액이 얼마나 집값에 반영되는지는 공급과 수요, 금리와 임대시장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한번 가격에 스며든 몫은 다음 매수자가 치를 비용이 된다. 보유세가 줄어 아낀 돈의 일부가 더 높은 매입가격으로 옮겨 가고, 대출을 끼면 원리금 부담도 함께 커진다.

혜택을 받는 때와 부담을 떠안는 때도 다르다. 기존 소유자는 자산가치 상승을 당장 누린다. 첫 집을 사는 사람은 높아진 매입가격을 마주하고, 대출을 이용하면 긴 상환 기간까지 짊어진다. 감면의 혜택은 현재에 집중되지만, 집값에 스며든 부담은 아직 집이 없는 사람의 미래로 넘어간다.

세금은 한 해씩 줄지만, 집값에 반영된 몫은 다음 매수자의 장기 주거비로 남는다.

집값 상승은 세대마다 다른 사건이다

집값이 올랐다고 모든 가구의 살림이 넉넉해지는 것은 아니다. 거주 중인 집이 올라도 옮겨 갈 집은 함께 오른다. 자녀의 주거비를 준비하거나 더 나은 지역으로 이동하려는 가구에 오른 집값은 쓸 수 있는 현금이 아니라 더 높아진 저축 목표로 돌아온다.

한국은행의 2026년 분석에서 주택가격 상승은 50세 미만 가구의 소비를 유의하게 줄였다. 50세 이상 가구의 소비 변화는 크지 않았다. 주택가격이 5% 오르는 모형에서 후생 변화를 최종소비재 지출로 환산하면 50세 미만에서 0.23% 줄고, 50세 이상에서 0.26% 늘었다. 한국은행은 50세 미만의 주택구매·상향 이동을 위한 저축과 차입 부담, 50세 이상의 높은 유주택 비율과 낮은 이동 유인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아티프 미안·루트비히 슈트라우브·아미르 수피의 ‘부채화된 수요’ 이론은 신용이 단기 수요를 앞당기는 대신, 누적된 부채가 뒤이어 차입자의 소비와 총수요를 누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은행의 가계부채 분석은 한국에서도 원리금 부담을 통한 소비 제약이 작동했음을 보여 준다. 오늘의 부동산 거래를 위해 내일의 식탁을 먼저 쓰는 셈이다.

총액보다 세금의 자리를 바꿔야 한다

한국의 재산 관련 세수는 OECD 평균을 웃돈다. OECD의 2026년 한국경제보고서에 실린 2024년 비교에서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은 한국 3.0%, OECD 평균 1.6%다. 다만 세금을 걷는 방식은 크게 다르다. 한국의 재산 관련 세수 가운데 부동산 거래 관련 세금이 50.4%, 반복적 보유세가 29.4%다. OECD 평균에서는 반복적 보유세가 약 56%를 차지한다.

집을 옮길 때 세금을 무겁게 물리고, 가진 채 기다릴 때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매기는 구조다. 국회미래연구원은 2024년 한국 부동산의 평균 보유세 실효세율을 0.147%, 주택분을 0.122%로 추계했다. OECD는 거래세가 만드는 이동과 자산 이전의 마찰을 줄이고, 시장가치를 기준으로 반복적 보유세의 역할을 높이자고 제안한다.

세수중립을 내세우려면 세금의 무게도 실제로 옮겨야 한다. 보유 부담을 높이는 만큼 거래 부담은 낮추고, 소득이 부족한 고령 1주택자에게는 살던 집을 지킬 수 있도록 납부를 미뤄 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세입자에게 비용이 넘어가지 않도록 임대차 보호와 공급 대책도 함께 가야 한다.

세제 전환은 집값의 급락을 피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을 완화해야 한다. 급락은 특히 레버리지가 큰 가구의 순자산과 담보가치를 훼손해 소비 위축과 금융불안을 키울 수 있다. 정책 일정을 미리 밝히고 거래의 문턱을 낮추되, 보유세와 거래세의 비중은 서서히 바꿔야 주거 이동성과 시장 효율을 함께 높일 수 있다.

다시 식탁으로 돌아오는 돈

좋은 세제의 성과는 세율표보다 사람의 이동과 월급에 드러난다. 사람들이 집을 옮길 수 있고, 처음 사는 사람이 평생의 소득을 미리 저당 잡히지 않으며, 이미 사는 사람도 갑작스러운 충격 없이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성과는 주거비를 내고도 월급이 얼마나 남는지에서 드러난다.

남은 월급이 식당과 서점, 돌봄과 교육, 동네의 작은 사업으로 흘러갈 때 내수는 숫자보다 먼저 생활에서 살아난다. 반대로 집값과 원리금에 오래 묶이면 자산은 커져도 거리의 불은 하나씩 어두워진다.

빈 식탁은 묻는다. 주거비와 원리금을 치른 뒤에도 먹고 배우고 돌볼 돈이 남아 있는가. 내수는 바로 그 여력에서 시작한다.

근거 자료

자료 기준일: 2026년 8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