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한반도의 남은 어둠을 등대로 밝히는 방법

불 꺼진 한반도의 북쪽. 그곳을 밝힐 전력망에 한국의 설계와 운영 능력이 닿을 수 있을까? AI 시대를 맞아 한반도의 전력망 전략을 구상해 본다.

밤의 경계에서 시작된 질문

한반도의 밤을 찍은 위성사진을 오래 바라보면 시선은 한곳에서 멈춘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북쪽으로 번지던 불빛이 군사분계선 앞에서 끊기고, 평양과 몇몇 지역을 제외한 북쪽은 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분단은 지도 위의 선이 아니라 빛이 사라지는 순간으로 보인다.

밤의 위성사진만으로 모든 가정의 전력 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NASA가 2024년에 공개한 사진에서 국경을 사이에 둔 빛의 격차는 뚜렷하다. 북한의 전력망이 주민의 생활과 생산을 충분히 떠받치지 못하는 현실이 밤의 지도에 드러난다. 그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켜져야 할 불은 어디일까.

어두운 산악 지역에서 병원과 상수도 시설, 마을의 불빛이 전력선을 따라 이어지는 밤 풍경
2025년 발전용량 8.38GW 한국은행 추계 · 838만kW
2025년 발전량 25.1TWh 한국은행 추계 · 251억kWh
수력발전 설비 68.4% 심각한 노후 상태 추정
화력발전 설비 84.8% 심각한 노후 상태 추정

숫자를 보면 그 어둠의 사정이 조금 더 선명해진다. 한국은행이 추계한 2025년 북한의 발전용량은 8.38GW, 발전량은 25.1TWh다. 발전소가 아예 없는 문제만은 아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수력 설비의 68.4%, 화력 설비의 84.8%가 즉각적인 교체나 성능 개선이 필요한 심각한 노후 상태라고 추정했다. 세워진 설비가 오래, 안정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진을 오래 보고 있으면 질문의 방향이 바뀐다. 북한의 어둠에서 한국이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가 아니다. 저 어둠 속에 먼저 불을 켜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고, 그 불을 오래 지키는 동안 한국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첫 불빛은 병원과 물 펌프에서

그렇다면 발전기와 변압기를 당장 실어 보내면 될까. 설비는 국경에 닿기 전에 먼저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라는 질문과 마주친다. 현재 제재 아래에서는 상업용 발전소나 남북 합작사업을 시작할 수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718위원회는 북한 주민을 위한 인도주의 물품과 서비스의 반입을 심사해 면제할 수 있지만, 품목과 수량, 운송 일정을 구체적으로 요구한다. 유엔 승인을 받은 뒤에도 관련 국가의 허가 절차가 남는다.

결국 첫 발전소의 크기보다 먼저 정해야 할 것은 전기가 도착할 주소다. 병원인지, 상수도 시설인지, 식품 냉장시설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누가 장비를 설치했고 어디에 쓰였으며 누가 고쳤는지도 뒤따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금은 국제기구나 제3의 관리기관을 거치고, 대금은 장비를 보낸 날이 아니라 실제 전력 공급 시간과 가동률에 따라 지급해야 한다.

유엔개발계획의 Solar for Health는 2017년부터 15개국의 보건시설과 저장시설 약 1,000곳에 전력설비를 지원했다. 이 선례에서 눈여겨볼 것은 태양광 자체보다 병원을 중심으로 표준 장비와 현지 유지보수를 함께 묶은 방식이다. 어느 병원이 얼마나 오래 전기를 썼는지 확인할 수 있을 때 다음 설비를 들여올 이유도 생긴다.

첫 전기는 체제의 상징이 아니라 병원의 냉장고와 마을의 물 펌프를 돌려야 한다.

한 기의 발전소가 아닌 100개의 작동하는 전력 섬

한반도 지도 위에 거대한 원 하나 대신 작은 점 100개를 찍어 본다. 점마다 병원이나 상수도 시설이 있고, 가까운 노후 수력발전 설비와 지역에 맞는 소규모 발전설비, 저장장치와 배전선이 그곳을 둘러싼다. 전국망이 흔들리는 밤에도 그 점 안의 냉장고와 물 펌프는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전력 섬이다.

왜 100개일까. 거점 100곳은 완공식에 내걸 목표가 아니라 한곳의 실패가 다른 지역으로 번지지 않도록 사업을 나누는 방식이다. 지역마다 다른 지형과 수요에 맞춰 설계도 바꿀 수 있다. 발전량과 정전 시간, 전기가 도착한 곳도 거점마다 확인된다. 작동이 확인된 점끼리 선을 이으면 지역망이 되고, 그 선이 충분히 이어진 뒤에야 전국망을 말할 수 있다.

작게 켜고, 확인하고, 연결한다

100개의 전력 섬이 하나의 전력망이 되는 순서

필수 시설의 독립 전력부터 시작해 검증된 거점만 지역망과 전국망으로 잇는다.

  1. 01
    필수 시설부터 켠다 병원 · 상수도 · 냉장시설
    지역의 수요 끊기면 생명과 생활이 흔들리는 곳
    발전 · 저장 · 배전
    독립 전력 섬 전국망이 흔들려도 필수 공급 유지
  2. 02
    100개 거점을 검증한다 전력 공급 시간과 사용처를 기록
    거점별 기록 발전량 · 정전 시간 · 사용처
    가동 성과 확인
    지역망 연결 서로 전력을 보완하는 가까운 거점
  3. 03
    공통 규칙으로 넓힌다 표준 · 보호 · 정비 체계 통합
    여러 지역망 고장이 번지지 않게 나눈 계통
    공개 표준 · 계통 보호
    전국 전력망 검증된 만큼 단계적으로 확장

다음 단계 주민에게 공급된 전력과 실제 가동 기록이 확인된 거점부터 연결한다.

100개의 전력 섬에서 지역망과 전국망으로.

전기가 모자란 밤, AI는 무엇을 해야 하나

밤사이 발전량이 줄고 저장장치의 잔량도 낮아졌다고 해 보자. 병원의 냉장고와 상수도 펌프, 작업장 가운데 어디에 얼마를 먼저 보내야 할까. 이때 AI의 첫 일은 서버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필수 시설의 전력이 끊기지 않도록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발전량과 지역 수요를 예측하고, 저장장치의 충·방전 시점을 조정하며, 고장 가능성이 높은 변압기와 선로를 먼저 찾는다. 점검 인력이 적다면 어느 설비를 먼저 살피고 어떤 부품을 보낼지도 좁힐 수 있다.

이 장면에서 거대한 모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계량기와 센서, 규격이 맞는 설비, 현장 기술자와 부품 창고다. 알고리즘이 낡은 전선을 갈아 끼우지는 못한다. AI는 그 위에서 정전 시간을 줄이고 정비 순서를 더 정확히 정하도록 돕는다. 고장 난 변압기의 위치를 제대로 알려 주는 작은 모델이 화려한 범용 모델보다 먼저 쓸모를 증명한다.

지역 전력 관리실에서 기술자 두 명이 차단기와 변압기를 점검하고 창밖의 병원과 마을에 불이 켜진 모습
지역 전력망 운영과 정비.

불을 켠 뒤, 한국에는 무엇이 남는가

발전기와 저장장치를 설치한 뒤에도 질문은 남는다. 고장이 났을 때 누가 원인을 찾고, 어느 부품을 바꾸며, 다음 정전 전에 무엇을 점검할 것인가. 한국에 남을 경험은 병원과 물 펌프가 더 오래 돌아가도록 고장 원인과 정비까지 책임지는 과정에서 생긴다.

그 책임을 지는 동안 한국 기업은 낡은 전력망에 분산전원과 저장장치를 연결하고, 제한된 전기를 먼저 필요한 곳에 보내며, AI로 수요와 고장을 예측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이 경험은 재난으로 전력망이 끊긴 지역과 섬·산간, 노후 전력망을 고쳐야 하는 다른 나라에서도 쓰일 수 있다. 발전기 한 품목이 아니라 설계와 시공, 운영과 정비를 함께 맡아 본 기록이 남는 것이다.

성과가 생기는 순서

먼저 확인할 것은 주민이 쓰는 전기다

사업의 목적

정전이 줄어든 일상

병원·상수도·냉장시설·학교·생산시설의 정전 시간이 줄고, 현지에서 설비를 고칠 기술자가 늘어난다.

그 과정에서 쌓이는 것

전력망을 오래 운영한 경험

발전·저장·전력전자·AI 예측·현장 정비를 묶어 노후 전력망을 운영한 기록을 쌓고 표준을 만든다.

보상의 기준무엇을 설치했는지가 아니라 정전이 얼마나 줄고 필수 시설이 얼마나 오래 돌아갔는지를 따진다.

불이 켜진 뒤 남는 것.

서버실은 언제 불을 켜야 하나

마을의 전력망에 처음 여유가 생긴 날, 가장 먼저 켜지는 불이 데이터센터의 서버실이라면 어떨까.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AI 중심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한 곳의 용량은 100MW 이상이고, 연간 전력 사용량은 약 10만 가구와 맞먹을 수 있다. 주민이 기다리던 전기보다 연산 수요가 먼저 들어오는 순간, 이 사업의 목적은 뒤집힌다.

서버실의 불은 병원과 상수도, 식품 냉장시설, 학교와 현지 생산시설의 불이 안정된 뒤에 켜져야 한다. 데이터센터 때문에 발전설비와 저장장치, 변전소와 송전선이 더 필요하다면 그 비용은 시설을 쓰는 기업의 몫이다. 전력망이 위태로운 시간에는 연산 부하를 낮추는 약속도 접속 조건이 된다.

앤트로픽은 자사 데이터센터의 계통 연결에 필요한 보강비를 100%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전기를 더 쓰는 기업이 그 때문에 생긴 비용도 부담한다는 약속이다. 한반도에서도 AI 기업은 주민을 위한 전력망이 자리 잡은 뒤 접속 비용을 내고 들어오는 큰 고객이어야 한다.

문이 열리는 날, 무엇을 꺼내 놓을 것인가

어느 날 남북 전력 협의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고 상상해 보자. 그날 품목 목록과 거점 설계, 돈을 지급할 조건, 설비를 고칠 사람을 처음부터 정하기 시작한다면 공사는 다시 기다려야 한다. 지금 마련할 것은 발전소가 아니라 그날 책상 위에 펼쳐 놓을 설계안과 계약서, 기술자 교육안이다.

설계 100개 거점 표준안

병원·상수도 중심의 전력 섬을 지형과 수요별로 나누고, 계량·보호·부품 규격을 미리 설계한다.

계약 검증 뒤 집행되는 자금

장비 반입과 최종 사용처, 현장 접근, 정전 감소를 확인한 뒤 다음 자금이 풀리는 계약을 만든다.

사람 공동 운영과 정비 교육

남북이 함께 쓸 공용 정비 매뉴얼과 디지털 훈련 환경을 만들고, 현지 기술자 양성 과정을 준비한다.

이 준비가 현장에서 버티는지는 한국의 섬과 산간, 재난 대응 현장에서 노후 수력 개보수·마이크로그리드·배전망 운영 AI를 함께 시험하며 먼저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에는 크게 시작했다가 멈춘 기억이 있다. KEDO의 두 기 1,000MW 경수로 사업은 일부 토목공사까지 진행됐지만 2006년 종료됐다. 정치적 합의와 대규모 자금이 단일 현장에 묶여 있어 한 고리만 끊겨도 전체가 멈추는 구조였다. 다음에는 한 거점이 멈춰도 다른 거점의 불은 남고, 사업이 중단돼도 주민 곁에 전력과 정비 기술이 남아야 한다.

다음 위성사진에 남아야 할 빛

언젠가 같은 궤도에서 한반도의 밤을 다시 찍는다면, 우리가 먼저 찾게 될 변화는 거대한 신도시 하나의 휘황찬란함이 아닐 것이다. 산간의 병원에서 냉장고가 밤새 꺼지지 않고, 물 펌프 주변에서 시작한 작은 불빛이 다음 마을까지 이어지는 모습일 것이다.

등대는 모든 곳을 대신 밝히지 않는다. 다음 불빛이 켜질 방향을 보여 준다. 한반도의 남은 어둠을 밝힐 등대도 거대한 발전소 한 기가 아니라, 병원에서 마을로 하나씩 이어지는 수많은 작은 불빛일 것이다.

근거 자료

자료 기준일: 2026년 8월 13일.